제가 요며칠 김승연 회장 관련 포스팅을 하면서 때로는 의문을 가졌던 점, 혹은 제가 불만을 표시했던 점, 혹은 제가 간과했던 점 등에 대해 체계적인 메모를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적어 둡니다.
일단 저는 그 동안 1) "
언론의 ABCD 눈감고 술래잡기식 보도관행", 2) "
김승연의 자식 사랑 비법 베스트 3", 3) "
김승연회장 출두 풍경: '쇼를 해라'", 4) "
싸구려 대한민국, 저열한 사회지도층들" 이라는 네 개의 연속되는 포스팅을 통해 김승연 회장 사건이 처음 연합뉴스를 통해 언론에 유출되고, 조선에 의해 추측 가능한 실명이 보도되고, 한겨레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적나라하게 밝혀지며, 경찰이 수사에 나서게 되는 일련의 과정 등을 제 나름의 문제 의식으로 지켜 보았습니다.
그냥 그때 그때 쓴 포스팅이라서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그 각각으로부터 공통의 문제의식을 뽑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문을 쓰는 게 아니라 메모를 남기는 거니까 간혹 중간에 이해가 안되고 논리가 엉켜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건 그냥 스킵하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공익의 범위를 넘어서서 사적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언론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는 익명보도의 범람에 대해 무엇인가 사회적 합의나 타개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거의 드러난 형편이지만, 사적인 반성과 다짐이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건 너무 취약합니다.
둘째, 재벌의 힘이 이렇게 경제외적 영역에 까지 확대되는 것은 재벌의 전근대적인 지배구조 때문이라는 확신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주식을 통한 경제 세습의 문제도 졸열한 재벌들의 의식 수준을 반영합니다.) 경영의 권력을 사회적 권력으로 생각하는 행태는 한심합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는 한 자본을 자기 보신의 바람막이로 활용하려는 행태는 반복됩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면 간단합니다. 사고치면 자르면 됩니다. 직원들이 서명하네 마네 난리칠 필요 없습니다.
세째, 재벌이 지배하는 회사는 재벌의 사적 재산과 주주 공동의 재산의 경계가 불분명해져 기업 체질을 약화시킵니다. 경호원은 회사재산입니까, 김승연 개인재산입니까? 회사소속변호사는 회사껍니까 김승연껍니까? 대답이 어렵다면 그만큼 둘이 엉겨 붙어 있다는 예깁니다. 왜 단순폭력 사건에 재벌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1) 경영과 자본이 밀착되어 있으니 회사의 공적권력 (여기는 폭력도 포함됩니다) 을 사익을 위해 마음대로 빼내 쓸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2) 경영자가 곧 자본가가 되다 보니 경영자의 단순폭행 (이건 사안이 미약하다는 말이 아니라 경영과 무관한 순수 폭행사건) 도 경영상의 문제로 비화됩니다. 주가 출렁이고 회사 직원들 총수 걱정하랴 자기 앞가림하랴 서명하러 불려 다니랴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이렇습니다. 그래서 전경련 누군가가 이걸 재벌과 관련지으려는 걸 경계한다고 했는데 이건 완전히 도둑 제발 저린 격의 얘깁니다. 관련짓기도 전에 관련짓지말라는 것 좀 보세요.
네째, 재벌은 국가권력을 불신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국가권력을 자기 멋대로 살 수 있습니다. 왜 김승연은 경찰에 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나서 이 문제가 크게 확대되어 법정다툼이 될 가능성이 생기자마자 김승연회장은 전직 검사, 판사 출신이 포진한 최소 13명의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했습니다. 나라 돈을 들여 검사, 판사를 키워 놓으면 결국 그들은 퇴임 후 변호사가 되어 재벌 뒷바리지에 열심입니다. 결국 세금들여 재벌 뒤가림용 법률가를 양성한 꼴이 되었습니다.
다섯째, 경찰은 스스로 자기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방법을 학습해야 합니다. 검찰의 기소독점이니 검경 간의 수사권 갈등이니 하며, 수사기관 사이에 권력투쟁이 존재합니다. 저는 권력기관은 기본적으로 견제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경찰이 무력하니까 경찰에 힘을 실어 검찰과 상호 견제, 균형감을 보이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사에서 경찰의 행태가 더욱 답답하고 한심한 겁니다. 남에게 보이려하지 말고, 시선 신경쓰지말고 매뉴얼 대로 왜 못합니까? 매뉴얼대로 간단한 일처리도 못해내면서 어떻게 검찰과 권력을 분점하겠다는 겁니까? 아마 이번 일로 여론 쟁탈전에서 뒤로 한참 밀리신 건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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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 :: 급히 적다보니 제 혼자만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있는 메모가 된 것 같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부연하겠지만, 일단 다섯째에 '경찰'과 관련해 적어 놓은 메모는 지금 당장 부연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검경 간의 수사권 독립에 관한 해묵은 논쟁이 있습니다. 그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서, 경찰은 이번 수사를 하면서 어느 정도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 능력을 대외에 과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광고' 방식이 서툴러서 그런지 저를 비롯한 여러분들이 속한 여론 그리고 언론의 십자포화를 요며칠간 받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신문을 스킵하면서 주소를 떠놓는다는 걸 깜빡했는데... 그 기사 중에 그런 묶음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번 남대문 경찰서의 수사상 실수를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를 묵살하는 빌미로 삼으려는 듯한 검찰의 분위기를 전하는 기사 말입니다.
저는 경찰이 좀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와 가까운 건 검찰이 아니라 경찰입니다. 제가 누구에게 얻어 맞으면 경찰이 달려오지 검사가 달려오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경찰이 수사권을 독립하겠다는 입장을 들고 나왔을 때 저는 내용도 안보고 찬성하는 편이었습니다. 제 생각은 기본적으로 모든 권력은 잘개 쪼개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검찰이 권력 게이지 5의 힘을 갖고 있다면 그 힘을 빼앗아서 그 중 1-2 정도는 다른 권력기관에 나눠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권력기관끼리는 서로 싸움을 많이 할수록 시민의 권리가 신장된다는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검경 간의 수사권 독립 문제가 이슈가 되었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나마 경찰 편이었습니다. 검찰은 더 쪼개지고 경찰은 더 얻어야 권력기관 간의 균형이 생기고 견제력이 생기기 때문이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한 게 없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면서는 아... 경찰이 이 건을 잘못 처리하면 여론 면에서 검찰에게 크게 밀리겠구나, 수사권 독립 논의에 관한 입지가 크게 흔들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경찰도 오죽 답답하겠습니까만, 검찰이 나서기 전에 멋지게 경찰 독자적으로 수사를 잘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꽤 큽니다. 그리고 경찰이 큰 수사 경험이 없어서, 재벌 다루는 법을 잘 몰라서 이번에 실수를 많이 하는데, 조금 더 학습할 기회를 갖도록 격려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아... 이렇게 쓰다보니 제가 원래 가졌던 생각이 무엇인지 애매해 지네요. 다음에 붙여 쓰더라도 지금은 그만 두는 게 낫겠습니다. 그리고... 정작 처음에 제가 이런 메모를 써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도록 만든 기사를 소개하지 못하게 되었군요. 다소 뒷북성의 컬럼이고 또 제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진 않지만 좋은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꽤 괜챦은 칼럼입니다. 여기에 제목을 링크로 연결해 두니 가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앞의 쳣째 논점과 이 기사를 관련지어 좀 생각을 해봐야하는데 위에 워낙 대충 적어둬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 지 막막하군요. 아무튼 논점이 없으면 만들어 내고, 의견이 없으면 남이 가진 좋은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한겨레 2007-05-03]
‘대기업 ㄱ회장’ 익명보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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