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ABCD 눈감고 술래잡기식 보도관행
정치경제리뷰 :
2007/04/25 15:35
제가 읽은 기사에 의하면 B라는 사람이 청담동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C라는 사람과 시비가 붙었답니다. C씨는 일행으로 보이는 C2, C3, C4와 함께 있었구요. 시비 도중 B는 C와 그 일행에게 떠밀려 계단에서 굴러 10바늘 짜리 상처를 입었답니다.
이 얘기를 B가 집에다 했는 모양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B의 아버지는 대기업 회장인 A라고 합니다. 아들이 맞았다는 소식을 들은 회장 A는 경호원 E, F, G, H, I, J 를 데리고 C와 그 일행들이 일하는 북창동의 한 업소로 찾아가 보복을 했다고 합니다. 연합의 보도로는 회장 A는 주변에 20명을 거느리고 그 업소를 덥쳤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업소에서 C와 그 일행을 끌고 모처의 외진 창고로 가서 C와 그 일행을폭행하던 회장 A는 자신의 아들을 때린 사람이 D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C를 추궁해 D 있는 곳을 알아낸 후 D를 폭행하였다고 합니다. 이 일이 경찰에 알려진 게 지난 3월 중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건관련자들 (A~Z) 는 모두 이 일에 대해 침묵하고 있답니다. 경호관계자나 회장도 발뺌을 할 뿐, 앞에 말한 사건이 일어난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 회장 A가 폭행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야 그렇다고 해도 회장 A 가 누구이며 어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인지를 부인하는 기자의 태도도 조금 못마땅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권리와 사생활과 초상권 같은 것을 훨씬 더 강력하게 보호해 주는 서양에서도 이런 식의 ABCD 눈가리고 술래잡기하는 식의 기사는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기자가 팩트에 대해 확실한 취재를 하면 얼마든지 법적인 정당성을 유지하면서 중요한 정보를 밝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취재가 안되어서 이런식으로 ABCD 할 바에는 아예 기사화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느냐를 밝히는 게 기사의 팩트에서 제일 중요한 6하 원칙이라면, 이 기사를 쓴 사람은 "누가" 그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덮어 두고 있습니다. 주어를 가리고 어떻게 기사를 쓰고, 구체적인 고유명사가 없이 이런 기사를 쓰는 게 타당한지 의심이 됩니다. 링크된 기사를 따라가서 전문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연합의 기사에 구체적인 고유성을 갖는 명사는 "청담동" 과 "에쿠스" 두 단어 밖에 없습니다. (북창동은 다른 뉴스에서 제가 보고 옮겨 넣은 것입니다.)
신문을 사서 볼 때 돈을 낸다면, 그건 기자더라 회장은 어느 기업의 회장이고, 술집은 어떤 술집이며, 창고는 무슨 동에 있는 무슨 용도 창고이며, 누가 어디를 때려 어느 정도의 상처를 입혔는지 그런 걸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건 뭐, 지나치게 벙벙하고 지나치게 도식적입니다. 이런식으로 팩트가 부족하면 기자는 자꾸 자기 의견에 기대어 기사를 쓰게 됩니다. 신문을 보는 건 의견도 의견이지만 일차적인 팩트를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보는 면도 있습니다. 이런 관행을 어이해야 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ABCD로 표기해야 하는 기사는 아예 보도를 안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사적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이대로 가야하는지... 외국의 기사는 이런 식 보도를 거의 못본 것 같은데, 이네들은 대체 어떻게 보도를 하길래 그럴 수 있는가요?
+ 연합 기사를 보시려면, 경찰 `대기업 회장 보복 폭력' 수사

